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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12 13:54
영화인문학기행-<고흐> 강의자료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696  
   영화인문학기행콘서트-고흐.hwp (48.0K) [10] DATE : 2017-05-12 13:54:08

영화인문학기행-<고흐>

                                                                                                                                     황영미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영화평론가, 소설가,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회장, 한국사고와표현학회장)

 

 


<영혼의 편지>: 고흐마을에서 만난 고흐의 숨결

      

예술가의 삶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 인정받는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예술가가 빈센트 반 고흐일 것이다. 지금은 고흐의 그림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목록에 들어있지만, 생전에 팔린 그림은 붉은 포도밭이라는 그림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것도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주었는데 우연히 싼 값에 팔린 것이다.

고흐는 네덜란드 준데르트라는 곳에서 1853년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신학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려고 했지만, 독특하고 열정적인 고흐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교단과의 마찰로 정식 목사가 되려는 고흐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8세가 되어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흐 역시 화랑에서 일하다가 파리의 유명한 화랑에서 일하던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생을 마감한 37세 때까지 10년 동안 그린 그림이 879점이나 된다. 1년에 90여점 가까이 그렸으니, 그의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암스테르담에서의 고흐박물관 방문은 1층부터 4층까지 초기작부터 마지막 작품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까지, 책에서만 보던 고흐의 작품을 모두 볼 수 있어서 뜻깊다. 고흐의 화풍은 초기에는 단순한 컬러로 광부나 농부들을 그렸고, 그가 가장 존경했던 밀레의 만종같은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했다. 초기작은 좀 어두웠고,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기에 그린 감자먹는 사람들이나 구두같은 작품은 농부의 생활상이 진지하게 묻어났다. 그후 1년 남짓 파리에서 지내며 인상파 화가들과 가까워지고 화풍에 변화가 생겼다. 때로는 벵 화랑에 전시된 일본 그림에 강한 충격을 받아 기모노를 입을 여성을 그리는 등 일본색이 짙은 그림도 남겼다.

그러다 파리 화단에 염증을 느끼게 되어 남프랑스 론 강가의 아를에 살게 되었을 때의 화풍은 노란색을 많이 사용하고 점차 톤이 밝아졌다. 터치도 강렬해지면서 고흐만의 독특한 화풍이 형성되었다. 아를에 살 때 그 유명한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도개교등이 탄생되었다. 아를에서 고갱 등과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려 하였지만, 격정적인 고흐의 성격으로 인해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정신병원에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정신병원은 현재 작은 호텔이 되었다. 아를에는 고흐의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곳곳에 고흐의 그림 포스터가 있다.

파리에서 35KM 떨어진 고흐마을로 불리는 오베르 쉬르 와즈은 그가 생애를 마감한 곳이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고흐를 위해 동생 테오는 아를은 거리가 멀어서 만나기 어려우니 파리 근교로 오라고 했고, 정신과 의사 가쉐가 돌보는 조건으로 이 마을에 살도록 주선해 주었다. 이 조용한 마을에서 생애 마지막 70일간 사는 동안 고흐는 83점의 그림을 그렸다. 하숙을 치던 라부 레스토랑에 방을 얻어 살면서 고흐는 매일 들판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고흐가 살던 3층 다락방은 고흐가 죽은 후 자살자의 방이라고 해서 방이 나간 적이 없기에 고흐의 침대와 책상이 그대로 있었다. 조그만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고흐의 방에 들어서자 침대와 책상 외에 남은 공간이 별로 없을 정도로 조그만 방에 살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살았던 고흐의 숨결이 느껴졌다. 고흐가 마치 내 친척이라도 되는 듯 가슴이 아려왔고 코끝이 찡해졌다.

이 마을에는 오베르 교회 가는 길목에도, 오베르 교회나 시청사에도 고흐가 그곳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까마귀는 없었지만, 고흐가 그렸던 밀밭은 여전하,여 고흐는 그림으로 살아 있는 듯했다. 그러나 고흐의 무덤은 너무도 초라했다. 마을 공동묘지의 화려한 무덤들 가운데 조그만 고흐의 묘비가 있었다. 그 옆에 나란히 동생 테오의 묘비가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한동안 고흐한테 푹 빠져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668통의 편지와 답장으로 구성된 영혼의 편지를 읽으면서 궁핍하고 고통스러웠던 고흐의 삶이 다시 한 번 곁에 와 닿았다. 또한 커크 더글라스가 고흐로 앤소니 퀸이 고갱으로 출연한 열정의 랩소디고흐: 위대한 유산이라는 영화도 보고, 돈 맥클린의 빈센트라는 팝송을 들으며, 관련 자료를 볼수록 진정한 예술은 이런 고통 속에서 탄생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됐다.

우리는 살면서 가능한 한 고통보다는 행복을 원한다. 그러나 고통이 그냥 땅에 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흐의 그림을, 고흐의 삶을 사랑하는가. 살았을 때 보상받지 못하면 죽은 후에라도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닐까.

 

** 첨부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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